싸리재길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창밖 거리를 바라본다. 스피커에서는 아랑훼즈(토요명화 시그널 음악)의 선율이 흘러나오고, 한때 백화점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퇴락한 건물은 내게도 영화로운 젊은 시절이 있었던 것을 알지 않느냐고 말을 거는 것만 같다. 늙수그레한 백화점 건물 입장에서는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이 카페가, 그러니까 백수를 넘겼음에도 여전히 제 구실하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 건물이 부러울지도 모르겠다. 이런 카페 안에서 구도심을 바라보면 나까지 덩달아 시간이 느릿느릿 가는 기분이 든다. 시절은 종잡을 수 없이 첨단을 향해 변해가는데 이 거리는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앨범처럼 변하지 않고 옛 모습으로 천천히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사는 곳의 시간과 저 멀리 떨어진 우주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이 ‘상대성 이론’을 실감할 수 있다. 이곳만은 내쳐 달리기만 하는 세상의 시간과는 별개로 혼자 멈춘 듯 슬로우모션으로 시간이 가니 말 그대로 별세계이다.